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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번째 편지 - 여러분의 상식은 안전하신가요?

여러분의 상식은 안전하신가요?

  저는 지금 일본 북쪽 홋카이도 섬에서 늦은 여름휴가를 즐기고 있습니다. 아니 백수니 휴가랄 것도 없습니다만 검사 퇴직 후 처음으로 3박4일의 비교적 짧은 일정으로 가족들끼리 단출하게 해외여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여름휴가를 끝낸 끝이라 비교적 여유 있게 일정을 보내고 있습니다. 퇴직 전 같으면 검찰인사니 을지연습이니 하여 꿈도 못 꿀 일이지만 퇴직하였기에 가능한 사치입니다.

  둘째 날 우리는 대형 온천 호텔에 투숙하게 되었습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대형 온천탕은 남여탕으로 구분이 되어 있는데 특이한 것은 매일 남탕과 여탕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24시간 영업을 하는데 다만 새벽 3시에서 4시 사이에는 남탕과 여탕을 바꾸기 위해 영업이 일시 중단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내일 아침 온천탕에 갈 때는 착각을 일으키지 말라고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여 주었습니다.

  저와 아들은 남탕으로, 아내와 딸은 여탕으로 행하였습니다. 시설은 한국의 호텔 사우나보다 못한 듯하였습니다. 저와 아들은 옷을 벗어 바구니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유니폼을 입은 여자 두 사람이 들어와 탈의실을 지나 다른 방으로 쑥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남탕의 탈의실에서 여자를 만나니 오히려 우리가 민망하였습니다. 저는 호기심에 그 여자들이 들어간 곳으로 가보니 발마사지실이었습니다. 우리 사우나에 이발소가 있듯이 이 온천탕에는 발마사지실이 붙어 있고 그 여자들은 그곳에서 근무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우리는 탕으로 들어가 온천을 즐기고 노천탕까지 가서 온천을 즐겼습니다. 그리고 다시 탕으로 들어와 욕조에 앉아 있는데 발마사지실 여직원 한사람이 탕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모든 남자들이 벌거벗고 목욕을 하고 있는데 여자가 당당하게 들어 온 것입니다. 그 여자는 저에게 다가오더니 뭐라고 말을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추측건대 발마사지 예약을 한 분이냐고 물어보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 여자는 벌거벗고 있는 다른 남자들에게 다가가서도 열심히 무엇인가를 물어보고 돌아다니더니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말로 듣기는 하였지만 정말 이상한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목욕을 마치고 휴게실에서 만났습니다. 아내가 저에게 누가 탕에서 당신을 찾았는데 몰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알고 보니 아내가 제가 지니고 있던 호텔방 열쇠가 필요하여 발마사지실 여직원에게 부탁하여 저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 여직원이 한 말이 ‘근호 상’이라는 말인데 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라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것입니다.

  저는 그 여직원이 당연히 예약 손님을 찾고 있으려니 선입견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에서 때밀이가 예약 손님을 찾는 모습을 연상한 것이지요. 선입견은 모든 것을 차단시키는 것 같습니다. 다른 말도 아닌 제 이름을 불렀는데도 못 알아들을 정도이니 하물며 다른 것은 어떻겠습니까.

  ‘상식의 배반’의 저자 던컨 J. 와츠는 ‘상식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도록 도와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상을 이해하는 우리의 능력을 심각하게 약화시킨다는 모순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수많은 사례를 통해 상식의 허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사례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화 모나리자’에 대한 것입니다. 저자는 과연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 그림을 명화로 인정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합니다. 모나리자는 1519년 완성된 후 무려 400년간 주목받지 못하고 지내다가 1911년8월21일 발생한 도난 사건을 계기로 명화로 인정받게 됩니다. 그 도난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휴관 일이던 이날 아침 한 청년이 루브르 박물관 전시실에서 모나리자를 떼어 낸 후 태연히 걸어 나갔습니다. 경비원 직원들은 박물관 직원이 사진을 찍기 위해 그림을 가져가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빈첸조 페루지아라는 범인은 1913년12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한 고미술상과 거래를 하다가 붙잡혔습니다. 이탈리아인인 그는 ‘이탈리아 미술품을 약탈한 나폴레옹에게 복수하기 위해 모나리자를 이탈리아로 돌려보내려 하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모나리자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양국, 나아가 전 세계의 관심을 받게 되었고 오늘날의 명성을 얻게 됩니다.

  저자는 이 사례에서 모나리자가 명화가 된 것은 그림 자체가 훌륭해서라기보다는 도난사건을 계기로 우리 모두 모나리자는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 결과 모나리자가 명화라는 상식의 틀에 갇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의 해제를 쓴 연세대 황상민 교수는 ‘내가 세상에 대해 아는 지식이란 바닷가 백사장의 모래 한 조각보다 못하다는 어느 과학자의 겸손한 마음이 상식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이다.’라고 전제하면서 ‘상식의 배반이란 자신의 믿음에 환한 빛을 비춰보는 것은 물론 의심을 품고 꼼꼼히 살펴보는 그런 일이다.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믿음을 의심해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새로운 믿음, 보다 정확한 믿음을 형성하는 첫걸음이다.’라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저는 ‘온천탕 사건’과 ‘상식의 배반’ 책을 통해 상식이 가진 무서운 선입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저의 상식이 통하던 검찰이라는 세상에서 28년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저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변호사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변호사 세상에 대해 어렴풋한 상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상식은 무용지물일 것입니다.

  앞으로 변호사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식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상식의 배반’ 책의 부제처럼 상식에 대해 ‘뒤집어보고 의심하고, 결별하는 것’ 아닐까요.

  여러분의 상식은 안전하신가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1.8.29.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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