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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번째 편지 - 퇴직으로 얻은 자유와 잃은 안정 사이에서

퇴직으로 얻은 자유와 잃은 안정 사이에서

  안녕하십니까. 저는 검사가 아닌 백수 조근호입니다. 아직 변호사 등록을 하지 못하였으니 변호사라고 호칭할 수도 없고 달리 호칭이 없으니 백수가 분명합니다. 이렇게 새삼스럽게 인사드리는 것은 검사를 그만두고 쓰는 첫 번째 편지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2008년 3월22일부터 월요편지를 썼습니다. 대전지검장으로 있으면서 총 42통의 편지를 써 그 편지들을 모아 ‘조근호 검사장의 월요편지’라는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그리고 서울북부지검장으로 있으면서 총 25통의 편지를 썼습니다. 그 후 부산고검장으로 재직하면서도 계속 편지를 쓰다가 도중에 사이트를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받아보고 계시는 월요편지는 그 사이트에서 자동 배달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이트를 만들면서 언제부터의 편지를 게제할까 고민하다가 부산고검에서 쓰기 시작한 것부터 수록하기로 하였습니다. 결국 이 사이트에는 부산고검장, 법무연수원장의 월요편지가 수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연히도 지난번 편지가 99번째 편지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99번째가 제가 쓴 모든 월요편지는 아닙니다. 대전지검 42통, 서울북부지검 25통, 그리고 부산고검이후 99통 등 제가 월요편지라는 이름으로 보낸 편지는 모두 176통입니다. 따라서 정확하게 계산하면 오늘 편지가 177번째 편지가 되어야 하지만 여러분이 익숙하신 사이트 연번에 따라 100번째 편지로 보내렵니다. 100번째, 우연이지만 숫자가 좋은 것 같습니다.

  지청장을 하는 모 후배는 문자를 보내 100번째 편지는 좋은 일이 있을 후일을 위해 남겨두고 퇴임 후 첫번째 편지를 101번째 편지로 시작하면 어떠냐는 아이디어를 주셨습니다. 이심전심으로 100번째 편지를 언제 쓰라는 것인지 짐작하였지만 저는 연속적으로 쓰기로 하였습니다.

  검사를 그만 두었다고 저의 진정한 자아가 연속성을 잃고 하루아침에 바뀌는 거도 아닌데다가 그런 의미로 100번째 편지를 비워두면 검사의 삶에 미련이 남아 앞으로 나아가는데 힘이 들 것 같기 때문입니다.

  우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많은 분들이 전화, 문자메세지, 댓글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저의 퇴직을 축하해주시고 진심으로 저의 앞날을 기원해 주셨습니다.

  먼저 여러분에게 퇴직 후 며칠간 어떻게 지냈는지 보고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가장 궁금해 하시는 부분일 테니까요.

  저는 사실 걱정한 것이 퇴직한 다음날 무의식적으로 출근 준비를 하다가 퇴직한 것을 깨닫고 아쉬워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는데 다행히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퇴직 전 자동차와 기사를 미리 준비해 두었습니다. 매일 기사의 도움을 받다가 제가 직접 운전하거나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면 스스로 너무 위축될 것 같아 허영을 부렸습니다. 검사로 살아갈 때는 어떻게 해도 괜찮았지만 퇴직 후 환경이 급격히 바뀌기는 솔직히 싫었습니다.

  퇴직 후 첫날 점심, 저녁 약속을 해둔 것이 있어 집을 나서기에는 아무 부담이 없었습니다. 점심을 약 두 시간 반 먹었습니다. 사무실로 들어가야 하는 부담이 없으니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점심 이후였습니다. 저녁시간까지 너무 시간이 많이 남아 무엇을 하여야 할지 몰랐습니다. 새내기 자유인이 겪는 어려움이라 여겨졌습니다. 길가에 차를 대고 전화도 하고 잔무도 보았지만 여전히 시간이 남아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였습니다. 평소와 달리 현관문이 열려 있어 아내가 있나 생각하고 문을 열어보니 현관에 신발이 가득하고 안에서 두런두런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아차 아내가 오후에 무슨 일이 있어 손님들을 집에 초대하였다는 말을 제가 잊고 집에 들어 온 것입니다. 몰래 집을 빠져 나오면서 제가 백수가 된 것을 실감하였습니다.

  다행히 많은 분들이 연락을 주시고 점심, 저녁 약속을 해주셔서 8월은 소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약속이 너무 많아 백수과로사라는 표현을 쓰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첫날을 지내고 나니 요령이 생겨 점심과 저녁 사이에 중간중간 작은 일거리를 만들었습니다. 가벼운 미팅도 잡고 잔무도 계획하였습니다. 그 후 어제 일요일까지 너무 바쁘게 지냈습니다. 아내는 저더러 무슨 비지니지 맨 같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최소한 한 달은 비즈니스 맨처럼 바쁘게 지내보고 싶습니다. 어떤 분들은 장기 해외여행을 갔다 오라고 권하시기도 하고 국내의 조용한 곳에 가서 쉬다가 오라고도 하십니다. 맞는 말씀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살아보렵니다. 사회에서 적응이 가능한지 스스로를 시험해 보기 위해서 말입니다. 여행은 그 후에도 가능하니까요.

  5일을 지낸 소감은 이렇습니다. 자유를 얻었다는 것이 실감이 납니다. 출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점심시간을 길게 써도 무방하고 낮 시간에 시내를 돌아다녀도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 사무실을 가보아도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유’인 것 같습니다. 반면 잃은 것은 ‘안정’입니다. 점심 먹고 돌아갈 곳이 없어 길을 헤매어야 하고 집에 들어갔다가 아내 친구들 때문에 나오기도 하고 전에 갔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지만 검찰이라는 큰 울타리를 떠나 사회라는 들판에 나와서는 반드시 겪게 되는 일 같습니다. 자유와 안정. 앞으로도 수없이 많이 자유의 획득으로 얻은 이점과 안정의 상실로 겪게 되는 위험 사이에서 고민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제가 무엇을 할지는 많은 시간을 가지고 고민하고 준비하겠습니다. ‘내게 나무를 벨 시간이 8시간 주어진다면 그중 6시간은 도끼를 가는데 쓰겠다.’고 한 링컨의 말처럼 준비에 많은 시간을 쏟아 붓겠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1.8.8.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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