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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06 한국경제 - 한경에세이] [9주차] 갱년기에 대한 어떤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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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28 09:09
얼마 전 차를 타고 가는데 비둘기 한 쌍이 차도를 횡단하고 있었다. 차와 비둘기의 간격이 좁혀졌으나 비둘기는 날아오를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가만히 보니 비둘기 한 마리가 다친 날개를 바닥에 끌며 가고 있었고 그 뒤를 다른 비둘기가 따르고 있었다. 한 쌍의 비둘기 중 한 마리가 날개를 다쳐 날 수 없게 되자 목숨을 건 차도 횡단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몇 년 전 해외 연구진이 남녀의 걷는 속도를 연구한 적이 있었다. 평균 시속은 남자 5.5㎞, 여자 5.1㎞였다. 짝을 지어 걷게 해보니 연인이 아닌 남녀는 남자와 여자의 중간 속도인 시속 5.3㎞로 걸었고 남남은 남자 속도보다 4% 더 빨리, 여여는 여자 속도보다 3% 더 느리게 걸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연인인 남녀는 남자가 완전히 여자 속도에 맞춰 느리게 걸었다. 

한국의 남편들도 결혼 초에는 아내와 같은 속도로 걸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은 가족을 위해 서서히 걸음걸이를 빠르게 한다. 성공을 위해 달음박질하는 것이다. 남편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아내의 속도는 점점 더 느려진다. 길을 걸을 때도 남편은 저만치 혼자 걸어간다. 뭐가 그리 급한지 아내를 아랑곳하지 않는다. 삶의 구석구석에서 이런 부조화가 발생한다. 

부부는 무엇인가 문제가 커지고 있음을 직감하지만 이를 해결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세월과 함께 그 간격은 점점 더 벌어진다. 이제 아내는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앞서 가 있는 남편을 불러 세울 기력조차 없다. 이때 아내의 선택은 무엇일까? 자연은 그녀에게 ‘자해(自害)를 통한 문제해결 방식’을 제안한다.

갱년기를 겪게 하는 것이다. 아내는 스스로 약해진다. 갱년기는 남편에게 아내의 걸음걸이를 살필 기회를 준다. 늦은 속도로나마 따라올 때는 아내에게 짜증도 부려보지만 아예 주저앉으면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다. 그리고 돌아가 아내를 살피게 된다.

남편이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부부의 남은 인생이 달라진다. “신혼으로 돌아가 아내의 속도에 맞춰 살아야지. 같이 지내는 시간을 늘리고, 함께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취미생활도 같이해야지.” 이렇게 생각하는 남편은 갱년기를 거치며 아내와의 관계를 회복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남편들도 수컷 비둘기가 목숨을 건 차도 횡단을 감행하면서까지 암컷의 속도에 맞추듯 외롭지 않은 노후를 위해 아내의 속도를 살펴야 한다. 필자는 “사랑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걸음걸이 속도에 맞춰 천천히 걷는 게 아닐까요”라고 답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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