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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편지 -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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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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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여러분 주말 잘 지내셨나요. 저는 부산에 있었습니다. 날씨가 무척 더워 이곳 저곳을 다니기도 쉽지 않더군요. 가족들이 부산에 내려와 40년 전 어릴 적 많이 가서 놀던 금정공원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입구가 바뀌어 예전 모습을 찾아내기는 어려웠습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바라보는 부산 동부의 모습은 멋진 그림엽서 한 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울주군에 있는 간절곶에도 가보고 반구대 암각화도 보러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간절곶, 그곳의 바닷바람은 왠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이곳에서 새해 첫날의 일출을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구대 암각화는 호수에 물이 많이 차 애석하게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걸어들어 가는 입구가 너무 아름다워 단풍이 아름다울 가을날에는 꼭 다시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의 주말은 어떠셨나요.

  8월12일 부임하였으니 이제 12일이 되었군요. 그러나 아직은 자리 잡히지 않은 느낌입니다. 부임 인사를 가야 할 기관도 남아있고 중간간부 인사도 남아있어 이번 주가 지나야 정리가 다될 것 같습니다. 혹시 여기까지 읽으시다가 이게 무슨 편지인가 궁금하신 분 안 계십니까. 저는 2008년 3월 19일 대전지검장으로 부임한 직후부터 서울북부지검장으로 근무할 때까지 매주 월요일 직원들에게 이런 식의 편지를 썼습니다. 이름하여 ‘월요편지’. 제가 가진 생각을 직원들과 나눌 수 있는 소통의 방법을 찾다가 편지를 쓰기로 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제가 가진 생각을 전하는 일방적 통로이었는데 점차 답장을 보내는 분들이 늘어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 소통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대신 저는 월요조회를 하지 않았습니다. 조회 말씀은 일회성이고 휘발성이 강해 허공에 몇 마디를 하고 나면 어렵게 시간을 낸 직원들 가슴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경험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부산고검에서도 여러분과 이런 방식으로 만나겠습니다. 이 편지에는 우리네 삶을 살아가며 부닥치게 되는 많은 주제들을 담을 것입니다. 중요하지만 너무 바빠서, 필요하지만 너무 당연해서 잊고 지내던 주제들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대전지검에서 이런 방식으로 나눈 편지는 ‘조근호 검사장의 월요편지’라는 제목으로 출간되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취임사에서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라는 다소 엉뚱한 질문을 드렸습니다. 그리고는 행복경영을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다소 당혹스럽고 생소하게 느끼셨을 것입니다. 도대체 이 사람이 무엇을 하려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에 대한 말씀은 차차 드리고 오늘은 여러분과 저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 하겠습니다.

  부산고검 검찰가족 입장에서 보면 매년 새로운 고검장이 부임해 옵니다. 금년에는 이례적으로 두 사람이 부임해 왔습니다. 그때마다 새 고검장은 자신의 스타일로 청을 새롭게 하려고 합니다. 복무방침을 내걸고 중점 추진사항을 정하고 사소한 회의 일정에서 청의 정책방향까지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요구를 합니다. 검사와 직원들은 새 스타일에 맞추기 위해 몇 달을 고생하지요. 그 과정에서 새 검사장의 스타일을 익히기 위해 서로 눈치를 보고 과거 모신 적이 있는 타 청의 직원들에게 물어 정보를 전해 듣습니다. 그러나 대개 두세달이 지나면 잘 적응이 됩니다. 그리고 10여개월 지나면 또 새로운 검사장이 오십니다. 이런 일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청은 늘 새로워 질 수 있는 기회를 갖기도 하지만 검사와 직원 입장에서는 여간 불편하고 귀찮은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검사장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똑같은 불편함이 발생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제 스타일을 간신히 가르쳐 놓은 직원들과 이별을 하고 평생 처음 근무하는 청에 와 새로운 직원들과 사귀고 있습니다. 공직이 갖는 숙명과도 같은 ‘적응의 과정’입니다.

  이런 경험을 10여 차례 이상한 분들은 적응의 선수가 되어 새사람을 만나도 그다지 흥분하거나 긴장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시간이 해법을 제시할 때까지 기다립니다. 다소 약아진 것이지요. 여러분들 중에 상당수는 이렇게 되셨을 것이고 저도 이런 경지에 올라있습니다. 서로 어떻게 적응의 기간을 보내야 하는 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행복경영의 연장선에서 이번에는 약간 다른 마음으로 지낼까 합니다.

 

 




 

  잭 캔필드가 쓴 ‘내 마음의 생수 61잔’이라는 책에는 이런 예화가 나옵니다.

간호학교에 입학한 지 두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교수님은 수업시간에 강의 대신 간단한 문제가 수록된 시험지를 돌렸다. 수업을 착실하게 들었던 나로서는 별로 어렵지 않게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문항에서 막혔다.

  "우리 학교를 깨끗하게 청소해주는 아주머니의 이름은?"

이것이 시험문제라고 할 수 있는가! 난 이 아주머니를 여러 번 봤었다. 검정 머리에 키가 크고 나이는 오십대쯤 보였는데 이름은 뭐지? 난 마지막 문제의 답을 공란으로 두고 답안지를 제출했다. 모두 답안지를 제출하고 난 후 한 학생이 마지막 문항도 점수에 반영되는 것이냐고 물었다. "물론이지."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간호사로서 앞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대하게 될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여러분의 각별한 주의와 배려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여러분은 항상 이들에게 먼저 미소를 보내야 하고, 먼저 인사를 건네야 합니다." 지금도 난 그 강의를 절대 잊지 않고 있다.

청소 아주머니의 이름이 도로시였다는 것도....

  저는 이런 마음으로 부산고검장을 지내겠습니다. 여러분은 저와 함께 지낼 기간을 어떻게 보내시겠습니까. 여러분에게도 무수히 많은 ‘도로시’가 있다는 사실 기억하시면 어떨까요.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09.8.24.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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