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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6번째 편지 - No man is an is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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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8.29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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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도 외톨이 섬은 아니라네/ 한 사람 한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이요, 전체의 일부/ 어떤 이든 죽으면 내 일부를 도려낸 것처럼 아프다데/ 내가 인류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지/ 조종(弔鐘)이 울리거든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나 알려 하지 말게나(therefore never send to know for whom the bell tolls)/ 그 종은 내 일부가 죽었음을 알리는 거라네”

이는 1624년 영국 성공회 신부 <존 던>이 쓴 소네트 'Meditation 17'의 일부입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이요, 나는 인류의 한 부분”이라는 외침은 300년 후 1939년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가슴에서 다시 살아납니다. 그때 <헤밍웨이>는 스페인 도시 <론다>에서 스페인 내전(1936-1939)을 배경으로 소설을 구상 중이었습니다.

론다는 스페인 남부 말라가에서 북서쪽으로 113km 떨어져 있는 해발 780미터 고원 도시입니다. 협곡과 절벽이 만들어 내는 경치는 인간의 상상을 불허하는 절경입니다.
 



<헤밍웨이>는 매일 아침 론다의 협곡 부근을 산책하며 전쟁의 참상에 대해 깊이 고뇌하였습니다. 그 결실이 <존 던>의 시 구절을 제목으로 삼은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나 (For whom the bell tolls)>입니다.

스페인 내전 당시 공화군으로 참전한 남자 주인공 로버트 조던은 여자 주인공 마리아와 사랑에 빠집니다. 조던은 적의 총탄에 맞아 죽어가면서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마리아에게 외칩니다.

“당신 속에는 내가 들어 있어/ 이제 당신은 우리 둘을 위해 가는 거야/ 우리 둘은 이제 당신 속에서 가는 거야.”

이는 <존 던>이 아내의 죽음을 애도한 시 구절 “우리 둘의 영혼은 결국 하나이니/ 내가 떠난다 해도 헤어짐이 아니요”를 연상케 합니다.

저는 8월 26일 스페인 여행길에 <론다>에 머물면서 아침 일찍 헤밍웨이 산책길을 걸었습니다. 개개인이 파편화되어 있는 요즘 <존 던>의 “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 ; every man is a piece of the continent, a part of the main”가 과연 얼마나 힘을 발휘할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 구절은 '연대'라는 개념을 떠 올리게 하였고 제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습니다.

<헤밍웨이> 산책길 끝에는 자그마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그 공원 입구에는 두 명의 타국 사람 흉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한 명은 여러분이 상상하는 대로 <어니스트 헤밍웨이>입니다. 또 한 명은 미국의 유명한 영화감독이자 명배우 <오손 웰즈>입니다.

<오손 웰즈>의 흉상에는 “인간의 고향은 그가 태어난 곳이 아니라 그가 묻히기로 정한 곳이다. 오손 웰즈는 론다에 묻히기를 원했고, 늘 론다인이라 불리기를 원했다.”라는 글귀가 쓰여 있습니다.

무엇이 <오손 웰즈>를 이곳 론다로 이끌었을까요? 공교롭게도 그도 존 던을 좋아했습니다. 그는 1943년 <존 던>의 'Meditation 17'을 낭송 녹음하기도 하였습니다.

<헤밍웨이>와 <오손 웰즈>는 ‘론다’도 좋아하고 <존 던>의 'Meditation 17'도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그 둘에서 어떤 연관관계를 느낀 듯합니다.

<오손 웰즈>가 “우리는 혼자 태어났고, 혼자 살고, 혼자 죽습니다. 우리의 사랑과 우정을 통해서만 우리는 잠시 동안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환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생각은 “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 ; every man is a piece of the continent, a part of the main”라는 생각과 맞닿아 있습니다.

사람은 원래 외톨이 섬이지만 사랑과 우정을 통해 대륙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오손 웰즈>는 <존 던>을 해석하고 있는 듯합니다.

가족들이 오랜 시간 여행을 하면 지치고, 지치면 사소한 일로 다투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가족여행의 목표를 절대로 다투지 않고 여행을 마치는 것으로 삼았습니다.

다행히 여행이 끄트머리에 다다르고 있지만 다투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며 잘 여행하고 있습니다.

여행하기 전에는 가족 4명이 모두 외톨이 섬으로 지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을 통해 어쩔 수 없이 하나의 대륙이 되어 같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 대륙이 진정한 하나가 되려면 가족들 사이에 오손 웰즈가 이야기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다행히 이번 여행 기간을 통해 가족들의 사랑이 더 깊어졌나 봅니다. 5년 전 가족여행과 비교하면 이번 여행은 기적입니다.

2017년 8월 17일 자 월요편지는 이번 여행과 정반대 상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족들과 여름휴가 차 해외여행을 하였습니다.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가족들과의 해외여행 기간 중에 꼭 한두 번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이번 여행을 떠나면서 가족들에게 화를 내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였습니다.(중략)

다짐에 다짐을 하였지만 이번 여행도 사나흘 지날수록 충돌 위험이 증가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인내가 폭발 수위를 넘나들고 있을 때였습니다.(중략)

순간 화가 나 고함을 쳤습니다. '너희들 눈에는 아빠 짐이 안 보이니.' 그제야 아이들은 죄송하다며 짐을 받아 들었습니다. 홧김에 할 말, 못 할 말이 따발총이 되고 있음을 직감하였지만 이미 총은 발사된 후였지요."

월요편지를 쓰고 있는 이 순간, 호텔 방문에 노크 소리가 들렸습니다. 딸아이 윤아입니다. 저는 “누구냐, 구호를 대라”고 외쳤습니다. 윤아는 천연덕스럽게 구호로 “가족은 하나다”를 외쳤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족은 한 사람 한 사람 외톨이 섬이 아니라 <하나>의 대륙입니다. 이 대륙이 한국에 가서 섬으로 찢겨나가지 않기를 기원해 봅니다.

여러분 가족은 각자 외톨이 섬인가요 아니면 하나의 대륙인가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2.8.29.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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