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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5번째 편지 - 30년 만에 스페인 그 옛집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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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8.22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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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수필가 피천득 선생님은 수필 <인연>에서 수십 년 전 하숙집 꼬마 아가씨 아사코와 훗날 세 번 만났다고 하면서 세 번째 만남을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만남’이라고 평했습니다.

지난 8월 20일 토요일, 30년 전 살았던 집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 만남이 그리움을 회상하는 추억의 만남이 될지 아니면 그리움을 산산조각 내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만남’이 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예전에 중학교 시절 저희 가족이 세 들어 살던 집을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집은 그대로 있었지만 너무 구질구질하고 낡아 바로 후회하고 만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찾아가는 집은 30년 전 스페인에서 연수할 때 1년간 산 집입니다. 제가 살던 동네는 포수엘로라는 마드리드에서 30분쯤 떨어진 신도시였습니다. 마드리드 시내의 아파트가 너무 비싸 교외로 빠져나와 제법 근사한 집을 고른 것이 바로 그 집입니다.

스페인은 6월부터 9월까지 야외 수영장에서 수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웬만한 아파트에는 야외 수영장이 있는데 마드리드 시내에 야외 수영장이 있는 아파트를 고르는 것은 유학생 신분으로는 어림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가격대로 포수엘로에서는 야외 수영장이 있는 아파트를 고를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 야외 수영장이 있는 아파트에 입주하고 뿌듯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퇴근 후 자신의 아파트 야외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호사를 언제 누려 보겠습니까?

구글의 주소를 따라 쉽게 집을 찾았습니다. 겉모습은 예전 그대로입니다. 벽돌색의 아파트를 보니 바로 어제까지 살다 나온 것처럼 낯설지 않습니다. 동네 자체도 깨끗하지만 아파트도 여전히 깨끗하였습니다. 총 4층짜리이니 우리로 치면 빌라 정도일 것입니다.

저와 가족들은 꽉 닫힌 문에서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마침 주민 한 사람이 문을 열고 나옵니다. 얼른 그 문을 잡고 주민인 것처럼 당당히 들어갔습니다. 저희도 30년 전에는 주민이었으니까요.

안으로 들어서니 아내가 저희가 살던 아파트 입구와 층을 기억해 냅니다. 옆 통로에 살던 장기 유학생 가족도 기억해 냈습니다. 그 유학생 때문에 전혀 알지 못하던 포수엘로를 간 것이었습니다.

야외 수영장에는 주민이 몇몇 있습니다. 30년 전에도 그랬습니다. 나이 든 스페인 남자가 느릿느릿 수영하는 모습은 매우 익숙한 광경입니다. 30년의 세월을 훌쩍 넘어 저는 1992년에 서 있습니다.

30여 분을 머물다가 외출하는 주민처럼 정원을 거쳐 출구로 향했습니다. 정원의 나무들은 30년의 세월을 머금고 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한 장면 한 장면이 소환되고 그 기억은 스페인의 맑고 서늘한 날씨만큼 기분을 쾌청하게 만듭니다.

너무 상쾌한 만남입니다. 중학교 때 살던 집을 간 기억과는 전혀 다른 아름다운 만남입니다. 밖에 나와서도 한참을 더 머물렀습니다. 그 동네, 그 집은 그대로인데 저희 얼굴에는 30년의 세월이 새겨져 있습니다.

아름다운 만남이지만 30년 세월을 생각하니 허망한 생각도 듭니다. 언제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을까요? 어제까지 그 집에서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인데 30년이 흘렀다니요. 허망함을 넘어 두려움이 느껴집니다.

앞으로 30년 후에도 이 동네, 이 집은 그대로 일터이지만 저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인생은 참 이상합니다. 하루하루는 더디게 가는 것 같은데 10년, 20년, 30년은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제 생애 다시 이곳을 찾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어렵사리 하고 우리 가족이 찾은 곳은 30년 전 제 딸이 다니던 초등학교입니다. 집에서 걸어서 불과 10분 거리에 있는 학교는 방학이라 문이 굳게 닫혀 있고 아무도 없지만 깨끗한 모습은 예전 그대로입니다.

학교 정문에 서니 옛 생각이 생생히 떠오릅니다. 딸아이는 학교 가기 싫어 정문을 붙잡고 고함쳤습니다. “아빠 살려주세요. 아빠 살려주세요.” 그럴 때면 담임 선생님이 나와 울부짖는 딸아이를 안고 교실로 들어가면서 저희더러 빨리 가라고 했습니다.

저희 부부는 딸아이가 잘 지내는지 궁금하여 점심시간에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땅을 파던 딸아이를 보고 속상해 그냥 집에서 데리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었지요.

그런 딸아이가 한 달쯤 지나자 친구도 생기고 친구와 놀 때 스페인어를 하는 것을 보고 안도했던 기억도 생생히 떠오릅니다.

30년 만의 만남은 마드리드 날씨만큼이나 쨍한 느낌을 주었고 다시 가지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게 해주었습니다. 아내 환갑을 기념하여 떠나온 스페인 여행은 이 ‘추억의 만남’ 하나만으로도 그 값어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가 살던 집이나 딸아이가 다니던 학교 이외에도 스페인 여행지 곳곳은 가는 곳마다 옛 추억을 소환해 주었고, 그 추억의 바다에 푹 빠지는 가슴 떨리는 경험을 매일 하고 있습니다.

아직 여행이 전반부입니다. 한국에서는 스페인 집시나 동유럽 소매치기를 걱정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막상 와보니 관광객이 적어 거리가 한산한 편이라 걱정과는 달랐습니다.

어제 8월 21일 70대 후반의 교민 댁에서 점심을 잘 대접받았습니다. 그분이 하신 말씀이 귓가에 맴돕니다.

“저는 71살에 은퇴하였습니다. 은퇴하고 얼마 지나고 보니 왜 이리 늦게 은퇴하였는지 아쉽기만 합니다. 제일 어리석은 사람은 늙어서도 일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70살이 넘고 나니 여행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은퇴하고 인생을 즐기십시오. 은퇴하기 전에는 늘 돈이 부족하고 무엇인가 쫓기면서 살았는데, 은퇴하고 나니 모든 것이 여유 있게 달라지더군요.”

30년의 세월이 하룻밤같이 느껴지는 터라 그분의 말씀은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2년 후면 팔십입니다. 그러면 골프도 어려울 테니 제가 살던 떼네리페라는 섬에 가서 낚시나 하면서 살 겁니다. 고검장님도 훌훌 털어버리고 떼네리페로 여행하러 오십시오.”

30년 전에 가본 스페인령 섬 떼네리페는 정말 낙원 같은 곳입니다. 오늘 그 낙원으로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선택은 제 몫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2.8.22.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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