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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2번째 편지 - liberty의 번역어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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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5.16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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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0일, 20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였습니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35번 사용하였습니다. 이 사실이 언론에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 기사를 읽고 예전 대통령의 취임사에서는 <자유>라는 단어가 몇 번 언급되었는지 궁금하였습니다.

19대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에는 <자유>라는 단어가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18대 박근혜 대통령 취임사에는 딱 1번 사용되었습니다. 통일문제를 언급하며 결과로서 언급하고 있을 뿐 <자유>자체를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로 한민족 모두가 보다 풍요롭고 <자유>롭게 생활하며,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행복한 통일시대의 기반을 만들고자 합니다.”

17대 이명박 대통령 취임사와 16대 노무현 대통령 취임사에는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15대 김대중 대통령 취임사에는 1번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를 설명할 때 사용된 것이라 간접 사용입니다.

“이들 나라(독일과 일본)도 2차대전 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같이 받아들여 오늘과 같은 <자유>와 번영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5번의 대통령 취임사에서 <자유>라는 단어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 취임사를 더 읽어 보겠습니다.

14대 김영삼 대통령 취임사에는 <자유>가 6번 사용되었습니다.

“신한국은 보다 <자유>롭고 성숙한 민주사회입니다.” “우리의 <자유>는 공동체를 위한 <자유>여야 합니다. 백범 선생의 말처럼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꽃을 심는 <자유>여야 합니다.” “금세기안에 조국은 통일되어, <자유>와 평화의 고향 땅이 될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언급된 <자유>라는 단어는 1993년 2월 25일 김영삼 대통령 취임사 이후 29년 만에 대통령 취임사에 등장한 것입니다. 그것도 한꺼번에 35번이나 등장하였습니다.

<자유>라는 단어 입장에서 보면 29년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부터 버림받고 있다가 2022년 윤석열 대통령에 이르러 갑자기 분에 넘치는 환대를 받고 있다고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면 <자유>라는 단어는 어떻게 우리나라에 등장하였을까요.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이리저리 논문을 찾다가 아주대 강사 최경옥이 쓴 “메이지기, 번역 한자어의 성립과 한국 수용 고찰 – liberty가 <자유>로 번역되기까지”를 참고할 수 있었습니다.

<자유>라는 단어는 이미 중국 고전에서 사용되던 단어입니다.

‘후한서’에서는 <자유>가 ‘마음 내키는 대로’의 의미로,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시 ‘苦熱(고열)’에서 ‘이렇게 무더운 날에 비로소 나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라고 노래해 <자유>를 ‘속박을 받지 않는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하였습니다.

명나라 말기부터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영어가 소개되자 영어 중국어 사전인 <英華字典(영화자전)>이 1815년부터 계속해서 발간되었는데 그 사전에서 liberty를 <자유>로 번역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모두가 <자유>로 번역하기로 약속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liberty에 대한 번역어는 ‘自由(자유)’, ‘自主(자주)’ ‘治己之權(치기지권 : 자신의 몸을 스스로 다스릴 권리)’, ‘自操之權(자조지권 : 스스로 행할 권리) 등 10여 개가 넘는 번역어가 경쟁을 벌이다가 1860년 이후 <자유>로 통일되었습니다. 특히, <自主>와 경쟁 관계였다는 것이 이채롭습니다.

일본에서는 근대 이전부터 <자유>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12세기 내지 14세기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平家物語(평가물어)’에서 ‘自由に’를 ‘마음 내키는 대로’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liberty에 대한 번역어가 등장한 것은 1860대 초반입니다. 중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liberty에 대한 번역어로 여러 가지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自由(자유)’, ‘自主(자주)’, ‘自在(자재)’, ‘寬弘(관홍 : 마음이 너그럽고 큼), ‘自由自在(자유자재)’, ‘自由自主(자유자주)’, ‘自主自由(자주자유)’ 등 다양한 번역어가 있었습니다. 1880년대에 이르면 <자유>가 이들 경쟁 번역어를 물리치고 최후의 승리자가 됩니다.

일본 지식인들이 <자유>이외에 다양한 번역어를 생각하게 된 것은 <자유>에 포함된 ‘마음 내키는 대로, 멋대로’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liberty를 번역하는데 적절하지 않다는 고민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1870년 후쿠자와 유키치(일본의 계몽 사상가)는 ‘서양사정 2편’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양서를 번역할 때, 적당한 번역어가 없어서 난처한 경우가 적지 않다. liberty를 <자유>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은데 원어의 뜻을 담기는 역부족이다. 중국에서는 自主, 自專, 自得, 自若, 自主宰, 任意, 寬容, 從容 등의 번역어를 썼으나 이 역시 원어의 뜻을 반영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이런 논란을 거쳐 일본에서 <자유>가 liberty의 번역어로 정착된 것은 1915년 경입니다.

우리나라는 어땠을까요? 조선에서도 개화기 이전까지 <자유>는 중국 고전에서 사용하는 ‘남에게 구속받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1880년부터 일본을 통해 신문명이 유입되면서 번역어도 따라 유입되었습니다. 1895년 유길준의 <西遊見聞(서유견문)>에 <자유>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사람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자유>라. <자유>는 자신이 좋아하는 마음을 쫓아 행함을 이르는 것이니, 그 행함에 있어 천지의 바름을 쫓아 취사하는 것 이외에는 기타 어떤 이유가 있어도 조금의 속박됨을 받지 않으며 구부러지고 휘어짐이 역시 없을지니”

지금 읽어보아도 자유에 대한 정의로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당시는 이미 일본에서 liberty에 대한 번역어로 <자유>가 정착되고 있었고 <자유>의 의미에 대해서도 서양의 지식이 많이 소개된 때입니다.

조선에서는 liberty에 대한 번역어 경쟁을 거치지 않고 <자유>가 그 지위를 쉽게 획득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사상가들이 우려하였던 <자유>라는 번역어가 뜻하는 ‘마음 내키는 대로’의 의미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 쉽게 없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자유>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윤석열 대통령 취임사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의 가치를 제대로, 그리고 정확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자유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합니다.” 29년 만에 다시 등장한 <자유>, 이제부터 <자유>에 대해 더 공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2.5.16.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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