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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2번째 편지 - 지난 100년간 인간이 육종한 최고의 꽃, 루피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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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01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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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한창입니다. 낮 기온이 30도까지 오르는 것을 보면 곧 여름이 되려나 봅니다. 봄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꽃'입니다. 유독 봄에는 꽃이 많이 핍니다. 개나리, 진달래로 시작한 봄꽃의 종류는 수없이 많습니다.

그런 수많은 꽃 중에 여러분이 아는 꽃은 몇 가지나 될까요? 저도 보기는 많이 보고 지내지만 정작 꽃 이름을 아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올봄 저는 예쁜 꽃 이름 하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100년간 인간이 육종한 최고의 꽃'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루피너스>입니다. 혹시 들어보셨나요. 사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4월 말 세상의 모든 벚꽃이 간밤에 사라져 마음이 허전하던 그 무렵, 저는 하이쿠에 이런 해석을 붙였습니다.

"이곳도 꽃/ 저기도 꽃/ 온 천지가 꽃 동네다/ 벚꽃이 피었는가 싶더니/ 벚꽃은 간밤에 사라지고/ 온갖 꽃들이 고개를 내밀며/ 자태를 자랑한다/ 바야흐로 봄이다/ 바라보느라/ 고개가 뻐근하다/ 꽃이 필 때면/ 그래도 좋다/ 고개가 대수냐/ 마음에도 몸에도/ 죄다 봄인데"

언제 벚꽃을 사랑하였나 싶게 온갖 꽃들로 마음이 싱숭생숭해졌습니다.

"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섬진강 봄물을 따라/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

제 심정이 김용택 시인이 노래한 <봄날>의 바로 그 심정입니다. 어디론가 달려가지 않고는 이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습니다. 5월 5일 저는 결국 바람이 나 꽃시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봄답게 수많은 꽃들이/ 자태를 뽐냅니다/ 대부분 이름을 모르는 꽃들입니다/ 저기 멀리 공중에 매달린 화분에서/ 이름 아는 꽃이 눈 웃음을 칩니다/ 나팔꽃입니다/ '내 전 생애가 나팔꽃만 같아라/ 오늘 아침은'/ 이렇게 노래한 시인이 있었습니다/ 나팔꽃은 금방 눈에 띄지만/ 자세히 보면 왠지 촌스럽습니다/ 자신은 멋지다고 우기지만 엉성합니다/ 아침에는 천년을 갈 것 같다가도/ 저녁이 되면 이내 할미꽃이 되고 맙니다/ 촌스럽고 엉성하고/ 시간 앞에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꼭 우리 인생을 닮았습니다/ 시인은 이런 점을 모두 알고/ 그렇게 노래했을까요/ 아니면 어떻습니까/ 오늘 아침의 저는 아침의 나팔꽃 같습니다"

그날의 감흥이 하이쿠 해석문에는 이렇게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 들린 꽃시장에서는 그 어느 꽃도 제 벌렁대는 가슴을 껴안아 주지 못했습니다. 아내와 저는 더 큰 꽃시장으로 향했습니다.

아내가 운전하고 가는데 차창에 일렬로 선 화분들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차는 이미 저만치 가버렸습니다. "여보 차 세워요. 돌려서 저기 가봅시다." 저희가 들어간 곳은 한가지 꽃만 키우는 농원이었습니다. 아마 수만 주는 족히 넘을 것 같습니다.

저희 부부는 그 꽃을 보고 넋이 빠져 버렸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꽃이 있을 수 있을까? 벌렁대던 제 가슴은 터져버릴 것만 같습니다. 한참을 눈을 떼지 못하고 꽃만 바라보았습니다. 무지개를 보는 것 같습니다.

농장 주인이 다가옵니다. "참 예쁘죠." "그러네요. 꽃 이름이 무엇인가요." "레인보우 루피너스입니다. 루피너스의 일종으로 일본에서 개량한 종자입니다. 예쁜 꽃이 봄에서 가을까지 오래도록 계속 핍니다."

루피너스, 처음 듣는 꽃 이름입니다. 이 꽃은 조지 러셀(1857-1951)이라는 영국의 시골 정원사가 54세 때 이웃집 화병에 꽂힌 꽃을 보고 매력에 빠져 20년간 개량해서 만든 꽃입니다.

1937년 영국 최고 권위의 첼시 화혜쇼에 출품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며 세계적인 품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100년간 인간이 육종한 최고의 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1951년 조지 러셀이 94세로 사망하자 영국 정부는 그에게 대영제국훈장을 수여 하였습니다. 즉, 루피너스는 대영제국훈장을 받게 한 꽃입니다. 그가 만든 <레셀 루핀 가든>에는 이런 팻말이 있습니다.


"He Sought Not Wealth Or High Renown. To Scholarship He Laid No Claim. And Yet So Long As Flowers Are , The World Will Bless George Russell's Name. 그는 부를 쫓지도 않았고 명성을 추구하지도 않았으며 학식을 자랑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꽃들이 재배되고 있는 한 세상은 그의 이름을 축복할 것이다."

루피너스에는 색깔별로 일곱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이름 붙이기 좋아하는 일본 사람들이 추위에 강한 품종으로 개발하면서 레인보우 루피너스라고 이름하였다고 합니다. 제가 만난 것은 바로 이 품종입니다.

금년 봄날 저의 바람난 가슴의 종착점은 바로 이 레인보우 루피너스가 되었습니다. 결국 5월 10일 정원에 레인보우 루피너스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그 감흥을 또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우연히 만난 레인보우 루피너스에 필이 꽂혀/ 200주를 심었습니다/ 너무 예쁩니다/ 아니 너무 예뻐질 것입니다/ 내 전 생애가 나팔꽃만 같아라라는 시에/ 저는 나팔꽃 대신 레인보우 루피너스를 넣겠습니다/ 내 인생이/ 이 꽃처럼 일곱 빛깔을 띠고/ 쑥쑥 자라고/ 오래 꽃 피고/ 이 꽃대가 지면 저 꽃대가 자라듯/ 다양한 색깔로 성장하다가/ 혹시 이 길이 막히면 저 길이 열리기를 희망합니다"

금년은 레인보우 루피너스만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레인보우 루피너스를 만난 금년 봄은 참 행복합니다.

여러분은 이 봄날 어떤 꽃을 만나셨나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1.6.1.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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