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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6번째 편지 - 코로나19 사태로 깨달은 [엄마의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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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27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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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자 가정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생겼습니다. 우리 모두 가정이 중요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고 '행복'을 상상하면 단란한 가정의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과연 가정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깊이 상고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네발로 걷던 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두발 걷기에 성공한 동물입니다. 매우 현명하게 진화한 것입니다. 두 손이 자유로워지면서 다양한 이점이 생기고 오늘날의 문명을 일구어냈습니다.

그러나 약점도 있었습니다. 직립보행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는 골반이 작을수록 유리하였으나 그럴 경우 여성의 산도가 좁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산도가 좁아지는 것에서 모든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말이나 소는 태어나면서부터 네 발로 섭니다. 어미의 자궁에서 충분히 성장하여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태어나면서 바로 설 수 없습니다. 미숙아로 세상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신생아 입장에서 황당한 상황입니다. 생존능력이 제로인 채로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신생아는 이런 상황을 원하지도 않았고 엄마도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몰랐을 것입니다. 만약 상황이 이리 흘러간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직립보행으로 진화하는 것은 다시 한번 고민하였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인간은 직립보행을 하게 진화되었고 그 결과 신생아는 모두 미숙아로 태어나는 운명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신생아는 엄마의 절대적 보호 아래 자라게 됩니다.

엄마는 젖으로 영양분을 공급하고 옷으로 추위와 더위에서 신생아를 지켜주고 동물들의 습격에서 보호해 줍니다. 자연계의 어류, 파충류, 동물 새끼들이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는 상황을 비교하면 인간의 신생아는 다행스럽게도 이런 끔찍한 상황에서 절대적 보호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신생아가 엄마로부터 절대적 보호를 받는 기간, 적어도 1년 내지 수년은 신생아 입장에서는 엄마에게 보답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엄마로부터 일방적으로 희생과 사랑을 받습니다. 자연은 이런 불균형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 기간의 경험을 저는 [원형적 기억]이라 명명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신생아 시절의 [원형적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생아는 무엇이 필요할 때면 의사소통 수단이 우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엄마는 신생아의 울음을 잘 해석하여 신생아가 원하는 것을 즉각 해결해 주었습니다.

신생아에게 이 기간은 절대적인 행복의 기간입니다. 엄마가 100% 희생과 사랑으로 자신을 보살펴 주던 그 기억, 이 기억은 인류 공통의 기억이었고 인류는 이 기억을 여러 가지 형태로 다시 소환합니다. 그리고 모든 문화권에서 용어는 다르지만 이 기억을 [인류 최고의 삶]이라 칭하고 그 이름을 [행복]이라 불렀습니다.

우리는 훗날 많은 문화권의 훌륭한 사색가들이 행복을 여러 가지 의미 부여하면서 추상화시켰지만 그의 가슴속에 있는 그 추억, 행복이라 이름 붙일 수밖에 없는 그 원형의 기억은 [엄마의 품]이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이 [엄마의 품]에서 자신의 삶을 시작하였고 인생을 살면서 되돌이표처럼 이 [엄마의 품]을 찾아 헤맵니다.

조금 성장을 하면 친구라는 세상이 열리고 경쟁이라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동물의 왕국]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지요. [동물의 왕국]은 생각보다 처절합니다. 인간은 이 [동물의 왕국]을 덜 잔인하게 만들기 위해 법도 만들고 도덕률도 제정하였지만 본질은 약육강식의 세상입니다. 국제정치를 보면 적나라하게 힘의 세상이 드러납니다.

인간은 동물의 왕국에서 지치게 됩니다. 때론 상처도 입습니다. 배신도 당합니다. 이때 문득 무한 사랑이 주어지던 엄마의 품을 떠올리게 됩니다. "나도 그 엄마의 품을 만들어야지. 그러면 그 옛날 엄마의 품이 주던 행복을 되찾을 수 있을 거야." 이런 생각이 인간을 결혼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결혼은 결코 [엄마의 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엄마의 품]에서 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엄마는 우리에게 무한 희생과 사랑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결혼으로 만들어지는 가정에서 남자와 여자는 무한 희생과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사실 결혼의 비극은 여기에서 생겨납니다.

엄마의 품을 기대하고 결혼하였는데 정반대의 상황이 초래된 것입니다. 결혼 초기에는 이 어머 어마한 부담이 짐이 되어 도망쳐 버리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동물의 왕국에서도 살아남아야 합니다. 인간은 이 이중고를 겪고 사는 운명인가 봅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에게 엄마의 품을 제공해 주었던 주인공, 그 엄마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그 엄마는 이미 엄마가 아닌 늙고 병들고 힘없는 어머니가 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짐입니다. 어찌해야 할까요?

이런 인간의 약점을 간파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엄마의 품이라고 자처합니다. 술 잔 속에, 또는 여인의 가슴속에, 혹은 마약 속에 엄마의 품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이 진정한 엄마의 품이 아니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됩니다.

철학자들이 [엄마의 품]은 원형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감각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이성이라고 설파하며 다양한 이론을 제시합니다. 책도 읽고 강의도 들으면 처음에는 그럴듯하지만 엄마의 품이 주었던 그 아름다운 기억을 대체하지는 못합니다.

이번에는 종교가들이 등장하여 사랑, 자비, 내려놓음 등을 설파하며 진정한 엄마의 품은 신에게 있다고 주장합니다. 아마도 맞는 말일 것입니다. 엄마도 신이 만들었다고 하니까요. 그러나 그 종교가들이 만든 집단은 또 다른 동물의 왕국으로 변하고 맙니다. 역사가 이를 증명하지요.

인간의 인생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엄마의 품]을 찾아 떠나는 쓸쓸한 여정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엄마의 품이 주었던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어렴풋이 깨닫게 됩니다. '희생', '사랑', '자비', '내려놓음' 등이 바로 엄마가 무능력자 신생아에게 주었던 것들입니다.

그 가치를 주는 엄마의 품을 찾아 헤매던 인생은 문득 자신이 엄마의 품이 되어 그 가치를 타인에게 구현해 줄 때 그 대가로 자신도 엄마의 품을 다시 한번 체험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엄마의 품은 이 세상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 파랑새가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야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기부, 봉사 등의 가치를 깨닫게 되면 인간의 한 단계 성숙하게 되고 이를 통해 인간은 계속 진화합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지금, 우리 가정은 엄마의 품인지 아니면 동물의 왕국의 또 다른 버전인지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엄마의 품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내가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코로나19를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엄마의 품인가요? 아니면 동물의 왕국인가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0.4.27.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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