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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번째 편지 - [사회적 거리 두기]가 깨닫게 한 인간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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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30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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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개념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개념으로 전 국민은 그동안의 인간관계를 되돌아볼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과 사회적 관계를 맺고 지냅니다. 사회적 관계를 많이 맺는 것이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위해 필수 불가결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 두기]는 과연 그 통념이 적절한지 반성적 고려를 할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모임이나 만남이 일제히 사라지자 금단현상 비슷한 고독감과 우울증을 느끼게 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정도 이 생활에 적응해 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지인이 살이 빠지고 날씬해졌기에 운동을 했냐고 물었더니 저녁 약속을 안 하니 저절로 살이 빠지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왜 그리 많은 모임에 나갔는지 반성하게 되더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사실 인간관계는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우리는 양에 몰두한 삶을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지나간 일정표를 보니 단둘이 만난 약속보다는 여러 명이 만난 약속이 훨씬 많았습니다. 이런 모임에 참석하고 돌아올 때면 누구 하나 제대로 만났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그저 모임의 일원으로 참석하고 있는 것이죠.

만남은 저의 영혼과 그의 영혼이 마주치는 것입니다. 달리 이야기하면 한 사람의 인생과 한 사람의 인생이 만나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네 모임은 영혼이나 인생은커녕 그의 편린과도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맙니다.

그저 최근 뉴스나 TV 화젯거리 또는 인터넷상에 떠도는 이야기들이 우리의 영혼과는 무관하게 사람과 사람 사이를 떠돌다가 3시간이 넘어 지겨울 때가 되면 서로 이별을 고합니다.

여러 모임이 겹치는 어떤 친구와는 같은 날 아침 점심 저녁 세 번을 만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개인적으로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 가족 관계는 어떤지 잘 알지 못하고 그의 겉모습만 만나고 말았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이런 '양' 중심의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갖게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그렇게 많이 만나던 사람들 중에 지금 이 순간 간절히 만나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지 떠올려 보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누가 떠오르시나요?

정리 컨설턴트로 유명한 [곤도 마리에]는 가지고 있는 수많은 물건을 정리하는 방법의 하나로 '설렘'이라는 기준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그 물건을 집어 들었을 때, 아직도 가슴이 뛰고 설레면 그 물건은 보존할 가치가 있지만 설렘이 없는 물건은 버리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전화번호부 목록을 놓고 한 명 한 명 이름을 떠올려 볼 때, 가슴이 설레고 간절히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진정한 친구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친구가 아니라 그저 지인일 것입니다.

제가 월요편지에서 인용한 [던바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영국의 문화 인류학자이자 옥스퍼드대 교수인 로빈 던바(Robin Dunbar)가 주장한 것인데, 아무리 친화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진정으로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최대한의 인원은 150명이라는 가설입니다.

던바의 법칙을 좀 더 들여다보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완전 절친]은 대략 5명, [절친한 친구, 절친]은 15명 내외, [좋은 친구]는 35명 정도, 그저 [친구]는 150명 수준, [아는 사람]은 500명, [알 것도 같은 사람]은 1,500명이라고 합니다. 수긍이 가는 숫자입니다.

[완전 절친]이나 [절친]이 바로 그의 이름을 떠올렸을 때 가슴이 설레는 바로 그 친구일 것입니다. 이 숫자는 합해서 20명 내외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평소에 형성하는 인간관계는 던바의 수 150명 수준입니다.

제가 언젠가 개인적으로 전화번호를 분류하였더니 던바의 수에 해당하는 150명에서 200명 정도가 1년 동안 제대로 연락하고 만나 인간관계를 맺는 사이이더군요. 그런데 모임은 [친구]와 [아는 사람]이 함께 속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누구는 친하지만 누구는 아는 수준입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 기간 동안에 우리의 인간관계를 다시 곱씹어 본다면 첫 번째 작업은 [완전 절친], [절친], [좋은 친구], [친구]가 누구인지 분류해 보는 작업일 것입니다. 인간관계의 '양'을 정하는 문제입니다.

그다음은 인간관계의 '질'입니다. 얼마나 자주, 어떻게 만날 것인지의 문제입니다. 인간관계의 폭이 넓을수록 빈도는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려면 한 사람에게만 시간을 할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살아온 내역을 보면 한 달에 한 번 만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런가 하면 여러 모임에 같이 소속된 경우에는 하루에 두세 번 만난 경우도 있지요. 문제는 어떤 형태의 만남이냐가 중요합니다.

이 [사회적 거리 두기] 기간 동안 만남의 형태를 어떻게 하는 것이 [완전 절친]과 [절친]의 숫자를 늘리는 길인지 고민하려는 것입니다. 그 해답은 1대1 만남 횟수를 늘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실 1대1 만남은 업무 관계면 몰라도 친구 사이에는 그다지 많이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만 그런지 몰라도 한국의 사회생활이 최소한 4명 정도로 이루어져 있어 1대1 만남은 생소하고 부담스럽기까지 합니다.

이제 이를 극복해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저는 이 부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노력해 볼 생각입니다. 1년간 무수히 많은 만남을 한 것 같은데 정작 [완전 절친]과 [절친]의 숫자를 세어 보면 손가락이 잘 구부려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저는 누구의 [완전 절친]이고 [절친]일까요? 누가 저를 그렇게 생각해 줄까요? 저는 [형제 같은 친구]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친한 친구들에게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너는 나의 [형제 같은 친구] 후보야"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해방 이후 고도성장하는 동안 우리의 인간관계가 비즈니스 목적으로 지나치게 '양적' 팽창을 하지 않았나 반성해 봅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 기간을 통해 진정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질 위주'의 만남을 고민해 보아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0.3.30.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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