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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1번째 편지 - 책 정리에서 깨달은 지혜, 대관소찰(大觀小察)

  • 조회 733
  • 2019.10.28 09:30
  • 문서주소 - http://mondayletter.com/bbs/board.php?bo_table=letter&wr_id=17583

 

오랜만에 이사를 하고 나니 짐 정리가 장난이 아닙니다. 정리를 해도 해도 끝이 없습니다. 일주일쯤 정리 정돈을 하였더니 이제 어느 정도 집이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에 짐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사람마다 정리하는 스타일이 다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을 정리하는 것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스타일은 일단 책 꾸러미를 열어 책을 책장에 척척 집어넣습니다. 책을 종류별로 분류하지 않고 일단 책장에 넣어 책 꾸러미를 없애는 것을 목적으로 삼습니다. 그런 다음 시간을 두고 책을 다시 정리합니다.

이 스타일은 일단 많은 책 꾸러미를 빠른 시간 내 책장에 넣는 장점이 있습니다. 물론 다음에 한 번 더 정리한다는 불편은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할 때는 이 방법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방은 깨끗하게 치워지니까요.

두 번째 스타일은 책을 분류하여 책장에 하나하나 넣는 방법입니다. 인문학 책은 인문학 책대로, 경영학 책은 경영학 책대로, 자신만의 분류법에 따라 책 한 권 한 권 분류하여 책장에 넣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한 번에 책장을 정리한다는 장점은 있지만 예상대로 시간이 엄청 오래 걸립니다. 며칠을 정리하여도 방에는 책 꾸러미가 여전히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 방법의 또 다른 장점은 책을 하나하나 선별하다 보니 보존할 책과 버릴 책을 바로바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스타일은 두 번째 스타일과 같이 책을 하나하나 분류해 넣는데 차이점은 책을 집어 회상에 잠기곤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 맞아. 이 책은 언제 샀지.' '이 책 내용 중에 어느 구절이 참 감동적이었지.'

그리고는 그 구절을 찾아봅니다. 다시 읽고 예전의 감동에 젖어 듭니다. 이러다 보니 책 정리는 뒷전이고, 추억 찾기로 빠져듭니다. 책 정리가 한 달에 끝날지 두 달에 끝날지 알 수 없습니다.

저희 집 식구도 각자 스타일이 다릅니다. 저는 첫 번째 스타일입니다. 정리 속도를 중시합니다. 아마도 정리되지 않은 채 짐꾸러미가 널려 있는 꼴을 보지 못하는 제 성격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세 가지 스타일이 각기 장점과 약점이 있지만, 속도감을 중시하는 제 입장에서는 첫 번째 스타일을 지지합니다. 혹시 대관소찰(大觀小察)이라는 고사 성어를 들어보셨나요.

먼저 전체를 관찰하고 다음에 부분을 살핀다는 말입니다. 저는 이 말에 따라 전체를 먼저 정리한 다음, 이 단계로 부분을 다시 정리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야 부분 부분 정리를 할 여유가 생깁니다. 그런데 전체가 러프하게나마 정리되지 않으면, 일이 계속 늘어지고 사람은 지치게 됩니다.

대관소찰은 여러 가지 경우에 응용할 수 있습니다. 학창 시절에 수학 시험을 상상해 보십시오. 20개의 문제가 있다고 하면 전체를 살펴 쉬운 문제를 먼저 풀고 어려운 문제를 나중에 푸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그런데 어떤 친구는 1번부터 문제를 풀어나가다가 2번에서 막히면 그 어려운 2번 문제를 붙잡고 계속 씨름하느라 다음 단계로 나가지 못하고 맙니다. 그래서 뒤에 있는 쉬운 문제도 놓치고 말지요.

저는 검찰에 있을 때 부하들에게 늘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보고서를 작성할 때 중요한 것은 마감 시간이다. 내용이 좀 부실해도 마감 시간을 지킨 보고서와 내용을 충실하게 하느라 마감 시간을 넘긴 보고서는 당연히 전자가 더 좋은 점수를 받는다. 일단 보고서가 완성이 되어야 상사가 그 보고서를 보완하거나 첨삭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

일을 잘하는 검사들은 마감 시간 이전에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 검사들은 늘 마감 시간을 어기곤 하였습니다.

지난주 몇 차례 소규모 모임에서 이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짐 정리하는 스타일은 사람에 따라 세 가지 스타일이 있는 것 같다고 했더니 모두 공감을 표시하였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과는 달리 짐 정리하는데 세 번째 스타일을 가진 사람이 꽤 되었습니다.

회사 간부를 맡고 있는 분들은 제 이야기를 듣더니 직원들이 일하는 스타일도 책 정리하는 스타일처럼 세 가지 타입이 있는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전체를 바라보지 못하고 한 가지 문제에 사로잡혀 그 문제 해결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원이 꼭 있다고 하였습니다.

모두가 모든 문제에 대해 다 정통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모르는 문제는 건너뛰고 일단 다른 문제를 푼 다음, 다시 그 문제로 돌아가 실랑이를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잘 안 풀리는 문제를 붙잡고 계속 씨름하다 보면 그 프로젝트는 퀄리티도 떨어지고 시간도 엄청나게 듭니다.

신입사원에서 중견 사원으로 발전하는 것은 일하는 스타일에서 두 번째나 세 번째에서 첫 번째 스타일로 발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두 번째나 세 번째에 머물고 있다면 스타일을 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관소찰 원리는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전체 글을 마무리한 다음 부분 부분 퇴고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한 문장을 명문으로 쓰려고 계속 고치고 있으면 그 글은 끝이 나지 않고 전체 균형도 잃게 됩니다.

이 대관소찰 원리는 우리의 삶에도 적용이 됩니다. 우리는 삶을 전체적으로 관찰하고 부분 부분 살펴야 합니다. 삶은 여러 가지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희 경우는 여러 번 말씀드린 대로 9가지로 나누어 관리하고 있습니다.

건강, 가족, 자산, 인격, 교양, 인맥, 신앙, 기부, 여행 등 9가지 부문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대관(大觀)한 다음, 그 하나하나가 적절한지 소찰(小察)하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하였거나 명망이 있는 분들 중에도 건강을 지키지 못하였거나 가족 관계에 문제가 생겼거나 인격에 문제가 있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대관(大觀)하지 못하고 속찰(小察)만 하였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책 정리나 일하기나 인생살이나 원리는 매한가지인 것 같습니다. 전체를 관찰하고 부분을 살핀다는 대관소찰(大觀小察)은 제가 이번에 이삿짐을 정리하면서 다시금 깨달은 소중한 교훈입니다. 여러분은 대관소찰(大觀小察) 하시나요. 아니면 소찰대관(小察大觀) 하시나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9.10.28.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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