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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9번째 편지 - 대한민국 청년들의 "친절함"

  • 조회 933
  • 2019.10.15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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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2일부터 6일간 세계변호사협회 서울연차총회가 코엑스에서 개최되어 각국 변호사 6,000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저는 조직위원장을 맡았던 최정환 변호사로부터 뒷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총회에 참석한 변호사 수십 명에게 서울에 대한 인상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들의 답변은 제 예상과 달랐습니다. 저는 그들이 제일 먼저 서울의 발전상에 대해 언급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공통으로 언급한 것은 의외로 [대한민국 청년들의 친절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최 변호사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많은 외국인 변호사들이 이번 행사 기간 내내 이런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택시를 잡으려고 서성이고 있으면 예외 없이 한국인 청년이 나타나 'You need help'하고 물어보았다는 것입니다.

어느 외국인 변호사는 이런 구체적인 사례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외국인 변호사 몇 사람이 시내에서 늦은 시간까지 식사를 하고 밤 12시 반에 택시를 잡으려 하였으나 잘 잡히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난감해하고 있는데 한국인 청년 한 사람이 나타나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어디로 가냐고 물어 코엑스까지 간다고 하였더니 이 시간에는 택시가 잘 안 잡히니 지하철을 타고 두 정거장만 가면 된다고 하였답니다.

그 외국인 변호사는 지하철 타는 법을 모른다고 하자 그 청년은 외국인 변호사 일행 4명을 데리고 지하철역으로 내려가 지하철 승차권을 끊어주고, 입구를 안내한 후 지하철 하차역까지 친절히 안내하더랍니다."

저는 최 변호사의 이야기를 듣고 매우 드문 특별한 사례가 아닐까 갸우뚱하였더니 최 변호사는 비슷한 사례를 하나 더 소개해 주었습니다.

"또 어느 외국인 변호사는 이런 경험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삼성역에서 코엑스 방면으로 가야 하는데 방향감각을 잃고 서성대고 있자 어느 한국인 청년이 나타나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어 사정을 이야기하였답니다.

그러나 그 청년은 외국인 변호사를 데리고 횡단보도를 두 번씩이나 건너 삼성동 현대백화점까지 데려다주고 자신의 온 길을 되돌아가 갔답니다. 길을 말로 안내할 수는 있지만 직접 안내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저는 최 변호사의 설명을 들으며 1992년 스페인 유학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유독 외국인에게 친절하였습니다.

제가 운전을 하다 신호 대기 중에 길을 찾기 위해 지도를 펴들면 반드시 클랙슨이 울리며 옆 차 창문이 열리고 어디로 가냐고 물었습니다. 목적지를 이야기하면 자신의 차를 따라오라고 하며 한참을 안내하여 데리고 간 기억이 납니다. 그때의 문화적 충격은 대단했습니다.

아무리 관광으로 먹고사는 나라라지만 외국인에 대한 친절은 병적이었습니다. 1992년 당시 외국인을 만나면 멀찌감치 떨어져 서 있던 우리들에게는 퍽 낯선 풍경이었습니다.

스페인에는 지방에 가면 버스정류장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노인들이 꼭 있었습니다. 타지에서 온 사람들에게 길을 알려 주기 위해 정류장을 사수하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였습니다.

한 번은 버스 정류장에서 어느 젊은 사람에게 길을 물었더니 바로 그 할머니가 달려오셔서 저 사람은 타 지역 사람이라 이 지역을 잘 모르니 자신이 알려주겠다며 어디로 가는지 물었던 기억이 생각납니다.

2019년 대한민국 청년들은 외국인만 만나면 쭈뼛쭈뼛하던 1992년 대한민국 청년과 사뭇 달랐습니다. 오히려 1992년 스페인 사람들을 닮아 있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청년들에게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늘 헬 조선만 외치는 청년들이 아니었습니다. 외국인들에게 당당하게 'You need help' 물어볼 수 있는 글로벌 시민이었습니다.

최정환 변호사에 의하면 외국인 변호사들이 두 번째로 손꼽은 서울의 인상은 의외로 [길에 노숙자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긴 서울총회가 개최된 장소가 삼성 코엑스이니 노숙자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서울에 노숙자가 없다는 사실이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고 외국인 변호사 눈에는 띄는 것이었다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세 번째는 [도로가 깨끗하고 벽에 낙서가 없다]는 것이 외국인 변호사가 손꼽은 서울의 인상이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1,000만 이상의 도시 치고 낙서가 없는 도시는 손에 꼽을 정도인데 서울이 그중 하나입니다.

저는 최정환 변호사의 이야기를 듣고 서울에 대해서도 자부심과 긍지가 생겼습니다. 우리는 늘 불만이 많습니다. 젊은 세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들을 많이 합니다. 서울에 대해서는 또 어떤가요?

그런데 외국인 눈에는 긍정적인 요소들이 많이 보인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대한민국에서 오래 살면 많은 단점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평소 장점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평범한 것들이 외국인 눈에는 우리의 장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대한민국을 격하해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라는 늘 시끄럽고 모든 것이 불평불만의 대상이지만 사실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많은 희망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특히 소위 [90년대 생]이라 일컬어지는 대한민국 청년들은 우리 세대와 전혀 달랐습니다. 우리 세대는 말로 친절을 이야기하였다면, 90년대 생들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친절을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 세대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친절하였다면, 90년대 생들은 전 세계인에게 친절하였습니다. 이제 대한민국 청년들은 동북아 변방의 한 나라 청년들이었던 우리 세대와는 달리 세계 10위권 나라의 청년답게 잘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9.10.15.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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