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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번째 편지-최우등상보다 개근상이 더 빛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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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09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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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등상보다 개근상이 더 빛나는 이유
 

  젊은이 두 사람이 현자를 찾아와 인생이 무엇인지 알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 현자는 두 젊은이를 사과 과수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과수원에는 먹음직스런 사과들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습니다. 현자는 이렇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너희들은 과수원 정문으로 들어가 뒷문으로 걸어 나오는 동안 단 한 개의 사과만 딸 수가 있다. 절대로 돌아서 걸을 수는 없다. 자 이제 가장 큰 사과 한 개를 따오너라. 더 큰 사과를 가지고 오는 사람에게 상을 주겠다.” 먼저 과수원에 들어선 젊은이는 몇 걸음 걷다가 지금까지 본 사과 중 가장 큰 사과를 땄습니다. 그리고 걸어 나오는데 자꾸 다른 사과가 더 크게 보였지만 고개를 숙이고 다른 생각 없이 자신이 딴 사과만 바라보고 뒷문까지 걸어갔습니다. 이제 다른 젊은이 차례였습니다. 그 젊은이는 신중하였습니다. 반드시 먼저 걸어간 젊은이보다 더 큰 사과를 따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천천히 사과를 골랐습니다. 몇 걸음 만에 제법 큰 사과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나 더 큰 사과가 있을 수도 있어 바로 따지는 않았습니다. 역시 몇 발자국 다음에 더 큰 사과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꾹 참았습니다. “반드시 저 앞에 더 큰 사과가 있을 거야.” 또 더 큰 사과가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이러기를 몇 차례 어느덧 뒷문이 나타나고 마지막 사과나무에 다다랐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그 사과나무에는 쭉쟁이 사과 몇 개만 달려있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중 하나를 땄습니다. 지나오면서 따지 않았던 사과들에 비하면 크기가 반도 되지 않는 사과였습니다. 그 젊은이는 뒷문 앞에 기다리고 있던 현자에게 요청하였습니다. “선생님 한번만 뒤돌아갔다가 오면 안 될까요. 제가 찜해둔 제일 큰 사과가 있는데요.” 그 현자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자네들이 인생을 알고 싶어 하지 않았는가? 이게 바로 인생이라네. 무엇인가 더 좋은 것이 있을 것 같아 계속 고르기만 하다가 세월이 가는 것 그것이 인생이라네. 그러나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

  지난주 수요일 서울과학종합대학 녹색성장과정 4기 졸업식장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아 계시던 강정호 교수님이 좌중에게 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검찰에 있을 당시 서울과학종합대학 총장이시던 윤은기 총장님의 도움을 받아 장학생으로 과정 하나를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검찰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열 두 번의 출석일 중 서너 번만 출석하였습니다. 변호사가 되고 나서 몇 분의 권유가 있어 이번에는 제대로 등록금을 내고 정규 학생으로 다녔습니다. 입학식 날 각자 소개시간에 장학생으로 공짜로 다닐 때는 잘 빠졌지만 이번에는 열심히 다니겠다고 공언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출석률이 절반을 넘지 못하였습니다. 결석하는 이유는 항상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그럴싸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으로는 결석하는 것이 바쁘다는 상징이 되는 양 은근히 결석하면서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강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적당한 사과 한 개를 따서 소중하게 여기기보다는 더 좋은 사과가 어디에 있지 않을까 여기저기 계속 기웃거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매주 수요일 열두 번은 출석을 하기로 약속하고도 막상 그날 다른 일이 생기면 비교하여 더 좋은 일이 무엇일까 고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속으로 부끄러워 졌습니다. 

  이 날은 졸업식이니 만큼 여러 가지 상들이 주어졌습니다. 그동안 배운 것을 테스트하는 골든 벨에서 우승을 하신 분에게 주는 상은 아마도 최우등상 쯤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에게 가장 값지게 여겨지는 상은 최우등상이 아니라 개근상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학교를 다니면서 겪은 수많은 졸업식에서 번번이 개근상이 주어졌지만 한 번도 그 상의 의미를 깨닫지는 못하였습니다. 저는 개근상을 받기 위해 노력한 적은 없었습니다. 늘 최우등상을 받기 위해 노력하였지요. 

  제 친구 주한일 변호사는 약속과 관련한 자신의 원칙을 이렇게 소개하였습니다. 선 약속 우선의 원칙이 그것입니다. 먼저 정한 약속을 최대한 지킨다는 것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니 ‘절대’란 있을 수 없겠지만 예를 들어 부인과의 약속도 선 약속이면 소홀히 하지 않고 지킨다고 하였습니다. 다소 의아해하였지만 그의 성실하고 진지한 성품에 비추어 보면 수긍이 갔습니다. 그에 비하면 저는 아내와의 약속은 순서상 가장 뒤편에 있습니다. 늘 익스큐즈의 대상이지요. 이제는 약속을 취소해도 미안한 감정도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아내가 나의 사정을 잘 이해해 주려니 하는 마음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큰 사과를 고르고 있는 저의 인생관이 개입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아내와의 약속이라는 사과보다 더 큰 사과가 있으면 그곳으로 시선이 옮겨가지요. 그러나 행복은 아내와의 약속이든 아니면 그 무엇이든 자신이 선택한 사과를 소중히 여기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아마도 그것이 전부일 것입니다. 

  계속 사과를 고르다가는 언젠가 자신의 수중에 사과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황망해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사과를 고르고 계신가요. 아니면 이미 고르신 사과에 만족하시고 소중히 간직하고 계신가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2.4.30.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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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그 동안 쓴 월요편지를 묶어 펴낸 ‘오늘의 행복을 오늘 알 수 있다면’(21세기 북스 출판)이 여러분들이 호응해 주신 덕분에 3쇄를 찍었습니다. 인세는 좋은 곳에 쓰려고 고민 중입니다. 계속 응원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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