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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번째 편지-내비게이션을 버려야 자신의 날개를 발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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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09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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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비게이션을 버려야 자신의 날개를 발견합니다.


  몇 년 전 미국을 여행할 때의 일입니다. 코네티컷 주 뉴헤이븐에 있는 예일 대학교를 구경하고 백 킬로미터 남쪽의 뉴욕 맨해튼을 향해 차를 몰고 출발을 하였습니다. 조금 달리다 보니 밤 10시가 되었습니다. 초행길인데다가 굳이 밤을 다투어 뉴욕에 갈 일도 없어 중간에서 잠을 자고 가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네비게이션이 먹통이 되어 버리는 것이 아닙니까? 네비게이션만 믿고 지도를 준비하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었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네비게이션을 고치기 위해 스위치를 껐다가 켜기를 수 십 차례, 시가 잭에 플러그를 넣었다 빼기를 또 수 십 차례.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한참을 주위를 맴돌다가 다행히 호텔을 발견하고 들어갔습니다. 네비게이션이 먹통이 되니 우리의 모든 기능이 마비된 듯하였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시동을 걸어보아도 여전히 네비게이션은 먹통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편의점에서 지도를 사서 오랜만에 독도법 실력을 발휘하여 뉴욕으로 향했습니다. 결국 1시간 남짓이면 갈 거리를 2시간을 넘겨 도착하였습니다.


  네비게이션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사는 바람에 네비게이션이 먹통이 될 때를 전혀 상상하지도 못하였고 따라서 아무런 준비도 해 놓지 않았던 것입니다. 네비게이션이 출현하기 전에는 지도만으로 잘 찾아다니던 길이 갑자기 외계행성인 양 낯설고 지도를 보아도 잘 찾기 어려워 진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노래방에서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노래방이 없던 시절에는 곧잘 노래 가사를 외워 부르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노래 가사를 외우려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노래방 기계 없이는 노래를 부른 다는 것이 엄두가 안 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계의 발달이 우리의 부족한 능력을 보완해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나마 있던 우리의 능력마저 퇴화시켜 버리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공직에 30년을 있다가 보니 여러 가지 네비게이션과 노래방 기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선배들이 그 역할을 해주었고 어떤 때는 동료들이 그 역할을 해주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길을 잃어버리거나 가사를 까먹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가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발생하여도 그리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이미 수없이 많은 해법들이 네비게이션 내부에 내장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공직을 떠나 민간 영역에 나와 보니 전혀 상황이 달랐습니다. 더군다나 선후배들이 있는 기존 로펌을 들어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법률사무소를 차리다 보니 제가 보고 따라갈 네비게이션이나 가사를 보여주는 노래방 기계가 전혀 없어 스스로 독도법으로 길을 찾아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독도법을 배운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네비게이션에 익숙해 있어 독도법을 배울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 것입니다.


  저는 법률사무소를 차리기 위해 사업자등록을 하고 컨설팅 회사를 차리기 위해 법인을 만드는 일에 어떤 번거로움이 있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직원을 채용하여 월급을 주고, 사무실 유지 경비를 지출하고, 세금을 납부할 준비를 한다는 것이 거의 예술에 가깝다는 사실도 하루하루 배우고 있습니다.


  사실 검찰에 있을 때도 그런 일이 있었겠지만 직원들이 알아서 척척해주고 검사장인 저에게 보고하지 않아 전혀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런 일들을 이제 뒤늦게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굳이 번거롭게 그런 고생을 왜 사서하냐고 하실 수도 있지만 새롭게 조직을 만들고 그것을 키워 나가는 일은 그 나름대로 보람이 있는 일입니다.


  다만 문제는 저에게 네비게이션이 없고 제가 스스로 독도법을 익혀 길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조직에 소속되어 오래 지내다 보면 길 찾는 기능이 퇴화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아주 없어져 버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요즘 저의 변신을 이렇게 설명하곤 합니다.


  “옥상에서 누군가 밀어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낙하산을 펴지 않고 날아보려고 기를 써서 팔을 흔들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놀랍게도 겨드랑이 사이에 퇴화해 버린 그러나 없어지지는 않은 조그마한 날개가 팔을 한번 흔들 때마다 1밀리미터씩 자라 다행히 땅바닥에 추락하지 않고 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날개는 처음에는 참새 날개 정도이었는데 이제는 까치 날개 정도는 되었습니다. 저는 언젠가는 창공을 가로질러 날아오르는 독수리의 날개를 갖게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열심히 팔을 젓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네비게이션이나 노래방기계 때문에 자신이 원래 가지고 태어난 날개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 더 이상 날 수 없게 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환경에 가게 되면 그 날개가 필요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 날을 위해 가끔은 팔을 힘차게 저어 자신의 겨드랑이에 숨겨져 있는 날개가 더 이상 퇴화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평소에 이런 훈련을 쌓지 않으면 정작 필요할 때 날지 못하고 주저 않아 다른 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자신의 지난날을 후회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여러분의 날개는 어떠신가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2.2.13.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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